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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14일, 대한민국 체육은 선진화 기치 속에 새로운 100년을 시작했습니다. 굳이 이날을 기점으로 삼는 것은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 출범을 대한민국 체육 시발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체육 100년을 장식한 100인 또는 100장면을 나름대로 추렸습니다. 최대한 객관화했지만 주관적입니다. 또 다른 장면이나 인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추후 하나하나의 장면을 재조명하면서 보강하도록 하겠습니다.

1895년 2월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교육조서를 반포했다.

“몸을 튼튼히 길러야 한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떳떳한 몸 움직임으로 맡은바 일에 힘쓰라. 괴롭고 어려운 일을 피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을 키우라. 근육을 키우며 뼈를 튼튼히 만들라. 병에 시달리지 않는 건강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라.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덕과 몸과 지를 올바르게 키워야한다.”

덕육, 지육과 함께 체육을 강조한 것으로 근대적 의미의 ‘체육’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1. 조선체육회 창립과 전국체전

1920년 7월 13일 오후 8시 인사동 중앙예배당에서 조선체육회 창립총회를 열고 창립취지서를 발표했다. 7월 14일 장두현을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조선체육회는 11월4일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조선체육회 주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열었다. 체육회는 이 대회를 제1회 전국체육대회로 본다.

2. 손기정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손기정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를 영국의 하퍼가 뒤따랐고 1분 뒤 남승룡이 3위로 들어왔다. 조선인 첫 올림픽 금, 동메달. 손기정이 달린 2시간 29분 19초는 2시간 30분벽을 깬 세계신기록이었다.

3. 일장기 말소 의거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으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였다. 조선인의 쾌거였다. 그러나 시상대에 선 그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박혀있었다. 서글픈 금메달. 8월 13일 조선중앙일보의 유해붕기자는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조선중앙일보는 민족지도자 여운형이 출옥후 사장으로 재직중이었다. 8월25일 보다 선명한 시상식 사진을 입수한 동아일보 이길용기자가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을 발행했다.

총독부는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에게 정간 처분을 내렸다.

4. 일본 패망과 체육회 재건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했고 조국은 광복을 찾았다. 민족지도자들은 11월 26일 조선체육회를 재건하고 여운형을 제11대 회장으로 뽑았다. 조선체육회는 1948년 9월 3일 명칭을 대한체육회로 바꾸었다.

5.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정상에 서다

아직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1947년 4월 19일 서윤복이 유서 깊은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서윤복의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 손기정의 세계기록을 깬 신기록이었다. 2위보다 4분이나 앞선 압도적 레이스였다. 정부수립전이라 미국적자로 분류되었고 유니폼이나 신발도 형편없었지만 분명한 코리언이었다.

6. 대한민국 첫 올림픽 런던

1948년 런던 올림픽. 미군정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올림픽에 나섰다. 갈때는 정부수립전이었지만 올 때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역도 김성집과 복싱의 한수안이 대한민국 올림픽 첫 동메달을 획득했다.

7. 이번엔 1, 2, 3위

1950년 4월 20일 보스턴마라톤이 열렷다. 대한민국의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 1, 2, 3위로 골인했다. 1등을 한 함기용은 고작 열아홉살의 고교 3년생(양정고보)이었다. 이들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치 덕분에 잘 달릴수 있어다고 말해 김치를 일찌감치 K프드로 등록했다.

8. 일본야구 타격왕 된 백인천

1962년 약관의 나이로 일본프로야구 도에이로 날아간 백인천은 3할을 기록하기도 하며 1974년까지 도에이의 주전으로 뛰었다. 1975년 다이헤이요클럽 라이온즈로 자리를 옮긴 그는 이적 첫 해인 1975년 3할1푼9리의 타율로 일본 진출 13년 만에 타격 왕에 등극했다. 한국 선수로는 재일동포 장훈(張勳)에 이어 두 번째였다.

9. 전 국민을 울린 눈물의 신금단

1964년 도쿄 올림픽. 세계적인 육상 선수 신금단이 북한대표로 출전했다. 1·4후퇴 때 월남한 아버지 신문준씨는 한눈에 딸임을 알아보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금단을 만났지만 부녀상봉은 7분 만에 끝났다. 신금단이 헤어지면서 외쳤던 “아바이”라는 그 한 마디는 그대로 노래가 되고 영화가 되어 인구에 회자되었다. 당시 인기가수였던 황금심이 ‘눈물의 신금단’을 불렀고 김기풍감독은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를 영화화했다. 이영화에는 당시 인기절정의 배우였던 김승호, 태현실, 허장강, 박암, 이대엽 등이 출연했다.

10. 콩나물 어머니가 만든 장창선의 첫 세계제패

1966년 6월 16일 미국 토레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자유형 플라이급의 장창선이 우리나라 선수 중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장창선은 2년 전 도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었다. 화려한 카퍼레이드가 펼쳐졌고 대통령은 그에게 집 한 채를 주었다..

11 . 프로복싱 첫 챔피언 김기수

1966년 6. 25 장충체육관. 김기수가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 미들급 세계챔피언이 되었다. 김기수는 1960년 로마올림픽때 그에게 패배의 아픔을 안긴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를 15회 판정승으로 꺾었다.

12. 거인국을 잡은 ‘난장이 국’의 여인들

1967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 신장면에서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작은 키의 대한민국 여자농구가 준우승했다. 여자농구는 여성스포츠의 선구자격이지만 어디까지나 우물 안 개구리였다. 그러나 예선리그 1위 후 6개국이 겨루는 결승리그에서도 동독, 일본, 유고슬라비아를 연파하며 세계농구계를 놀라게 했다. 소련의 키는 뚫지 못하고 50-83으로 져 준우승했으나 팀을 이끈 박신자는 우승국이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13. 풍운아 이회택

1970년 아시안게임 축구. 이회택은 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 버마와의 공동우승을 이끌었다. 동북고 3학년이던 1965년 대표로 발탁되었다. 이회택은 양지팀 소속이었던 1967년 메르데카컵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아시아 올스타에 뽑혔다.

14 ‘마녀 백옥자’ 방콕에 뜨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백옥자가 투포환에서 14m 57cm를 던졌다. 아시아 최고기록이었다. 비슷한 운동이라 장난삼아 출전한 투원반에선 동메달을 획득했다. 금 1개에 동 1개. 백옥자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 28cm의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중국의 거인들을 물리치고 또 한번 금메달 고지에 올랐다.

15.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수영의 금메달은 꿈도 꾸지 않았던 시절이었다.그러나 조오련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수영 400m와 1500m에서 우승, 아시안게임 사상 첫 대한민국 수영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를 석권, 2관왕 2연패의 기록을 세웠다.

16. 섬개구리 만세

1972년 6월 제1회 제1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전남 신안 앞바다 사치섬 안좌초등학교 사치분교 농구팀이 출전했다. 전교생 78명의 이 조그마한 학교 팀 선수들은 서울 구경이 처음이었지만 승리에 승리를 더해 결승까지 올랐다. 서울 계성초등학교에게 57-86으로 졌지만 사치분교의 농구이야기는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얼마 후 ‘섬개구리 만세’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17. 사라예보의 기적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제32회 세계탁구 선수권대회. 정현숙, 이에리사, 박미라를 내세운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이 난공불락이라고 여겼던 일본과 중국을 연파하며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정부 수립 후 처음 일어난 세계 1등이었다. 이에리사는 단체전에서 벌어진 19번의 단식을 모두 승리하는 대 기록을 작성했다.

18. 양정모, 올림픽 첫 금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대한민국의 올림픽 28년만에 첫 금메달이 나왔다. 자유형 레슬링 페더급의 양정모가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 결승리그에서 미국의 진 데이비스를 폴로 누른 덕분에 몽골이 오이도프에게 지고도 벌점에서 1점차로 우세,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9. ‘나는 작은 새’ 여자배구의 동메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배구가 구기종목 중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했다. ‘날으는 작은 새’ 조혜정을 앞세운 유경화, 유정혜, 이순복, 변경자, 정순옥, 마금자,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백명선, 윤영내 등 12명은 불굴의 투지로 헝가리에 역전승, 동메달을 땄다.

20. 갈색 폭격기 차범근, 독일에 뜨다

1976년 박스컵 축구 말레이시아전. 경기 종료 7분 전까지 1-4. 진 경기였다. 그러나 그곳에 차범근이 있었다. 그는 그 짧은 순간 3골을 몰아넣어 순식간에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었다. ‘아시아의 표범’에서 ‘갈색 폭격기’로 거듭난 차범근은 만 36세가 되는 1989년까지 E. 프랑크푸르트(1979~1983), 바이어 레버쿠젠(1983~1989) 등에서 12년간 총 308경기에 출장, 98골을 넣었다. DFB-포칼이나 UEFA 컵 기록까지 포함하면 372경기 121골이다.

21. 4전5기의 챔피언

1976년 11월26일 파나마의 파나마시티. 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타이틀전이 열렸다. 도전자는 대한민국의 홍수환이고 챞피언은 ‘지옥에서 온 악마’라는 링네임의 카라스키야. 챔피언은 돌주먹답게 홍수환을 3회 네 번이나 다운 시켰다. 승리를 바라보기 힘들었던 홍수환이었지만 3회 완전히 회복한 기운으로 카라스키야를 KO시키고 새로운 챔피언이 되었다.파워볼게임

22. 야구, 세계대회 첫 우승

1977년 니카라과에서 대륙간컵 대회가 열렸다. 한일은행의 김응용감독이 국가대표 감독 신입식을 치른 대회였다. 대한민국의 출발 전 최고 목표는 3위 정도였고 그나마도 자신 할 수 없었다. 다행히 6강에 올랐으나 예선 4차전에서 덜미를 잡혔던 일본과 준결승을 치러야 했다. 걱정이 앞선 경기였지만 초대 일본 킬러 이선희가 9회까지 완투하며 2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고 김봉연이 6회 결승 솔로 홈런을 터뜨려 대한민국의 3-2 승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마지막 승부에서 5-4로 승리, 세계대회 첫 우승을 작성했다. 대표단은 김포공항에서 시청앞까지 우승 카퍼레이드를 벌였고 훈장까지 달았다.

23. 교수를 무너뜨린 대학생 박찬희

박찬희는 고교 1학년 때 국가대표로 뽑혔고 고 2 때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후 프로로 돌아섰다. 1979년 3월 18일 타이틀전에 나선 그의 상대는 WBC 플라이급 타이틀을 14차례나 방어한 멕시코의 미구엘 칸토. ‘링의 교수’로 불릴 정도의 기교파. 하지만 박찬희는 그를 끝까지 몰아붙어 15회 판정승을 거두고 새 챔피언이 되었다.

24. 챔피언탄생을 위해 한겨울 체육관 문을 다 열다

김태식은 이른바 스트리트 파이터 출신이다. 1980년 2월17일 김태식은 2회 1분 11초만에 KO승을 거두며 WBA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최단 전적 챔피언이고 최단경기시간 세계 타이틀전 승리였다. 챔피언이 더운 나라 출신이어서 한겨울임에도 장충체육관의 문을 모두 열어 춥게한 가운데 경기가 진행되었다.

25. 세울 코레아 52, 나고야 27

경제적으론 ‘해서 안되고’. 체제상으로 ‘힘들고’, 준비관계상 ‘이길 수 없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 유치전. 거의 결승라인에 도착해있던 일본의 나고야를 막판 신나게 제쳤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제84차 총회. 사마란치 IOC위원장은 서울의 승리를 발표했다. 52-27이었다.

26. 아름다운 인어자매

최윤희, 최윤정 자매는 나란히 1982년 인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최윤희는 아시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 3개를 건져 올렸다. 여자 배영 200m, 100m와 개인혼영 200m 금이었다. 아시안 게임 수영 사상 최초의 3관왕이었다. 언니인 최윤정은 세 종목 모두 은메달이어싸. 최윤희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배영 100m, 200에서 또 아시아 최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 2개를 건졌다.

27. 원조 ‘약속의 8회’ 1982년 세계선수권대회

1982년 9월 14일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우승자를 가리는 한국-일본전. 선동열이 2회 2점을 내주는 바람에 막판까지 끌려다녔다. 그러나 ‘약속의 8회’. 마침내 타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정수의 1타점 2루타,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 번트’로 2-2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2사 2, 3루에 타석에서 선 한 대화가 역전 3점 홈런을 터뜨렸다.

한대화의 이 홈런과 일본전 8회말 역전 공세는 대한민국 야구의 아이콘이 되었다. 일본전 ‘약속의 8회’ 원조였다. 대한민국 야구는 이후 시드니 올림픽 등 일본과의 주요 경기 때마다 8회만 되면 역전타를 날렸다.

28. 홈런으로 시작하고 끝난 1982년

82년 출범한 프로야구가 홈런으로 지고 샜다. 개막전에서 MBC청룡의 이종도는 삼성에게 아픔을 안기는 결승만루홈런을 날려 프로야구를 흥행으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OB의 김유동이 역시 삼성을 상대로 만루홈런을 쏘아 올려 대미를 장식했다. 만루홈런의 주인공은 달랐지만 그것을 허용한 투수는 두 번 모두 삼성의 이선희였다.

29. 죽음도 막지 못한 투혼의 김득구

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시저스 팰리스 호텔 특설 링. WBA 라이트급 챔피언 맨시니의 15라운드 1차 의무방어전. 9회까지 우세한 경기를 펼쳤던 도전자 김득구는 후반 힘이 빠졌고 결구 14회 KO패했다. 그리고 나흘 뒤 그는 심장과 신장을 미국인에게 남기고 힘들었던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국민적 아픔을 준 슬픈 전설의 김득구. WBA는 15라운드 경기를 12라운드로 줄였다.

30. 롱런의 길을 연 장정구

1983년 3월 장정구는 챔피언 사파타를 불러들였다. 장정구는 3회 TKO승을 거두며 WBC 라이크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경량급치곤 주먹이 강했던 장정구는 1988년 6월 27일 도쿄에서 벌어진 첫 원정 방어전에서 일본의 오하시 히데유키를 8회 TKO로 물리치고 15차 방어에 성공한 후 스스로 링을 내려와 타이틀을 자진 반납했다. 15차 방어는 WBC 최고 기록이었다.

31. LA 골드 식스

1984년 7월28일 LA올림픽. 동구권이 불참한 덕분이지만 대한민국이 한꺼번에 6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레슬링 자유형 68kg급의 유인탁은 허리 통증을 견디며 금메달을 만들었다. 김원기는 그레코로만형 62kg급에서 깜짝 금메달을 들어올렸다.

신준섭은 복싱 미들급, 서향순은 여자 양궁 개인전, 안병근은 유도 71kg급, 하형주는 95kg급에서 금메달을 만들었다. 박찬숙을 앞세운 여자 농구와 여자 핸드볼이 은메달을 획득, 대한민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 등 모두 19개의 메달을 획득하며 단숨에 종합 10위에 랭크되었다.

32. 장정구를 넘어선 유명우

유명우는 1985년 12월 미국의 조이 올리보를 15회 판정으로 물리치고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벨트를 찼다. 유의 챔피언 등극으로 한국은 WBA와 WBC의 양대기구 한 체급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유명우는 1991년 16차, 17차 방어전을 성공하여 장정구의 방어전 기록을 뛰어 넘었다. 주니어 플라이급의 17차 방어전 역시 WBA의 최고기록이었다. 유명우는 1991년 4월 28일 일본 원정 18차 방어전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12회 판정패, 타이틀을 놓았다.

33. 임춘애, 뜻밖의 3관왕

임춘애의 금메달은 뜻밖이었다. 1개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3개라니. 임춘애는 서울 아시안게임 여자 800m 경기 두 번째로 골인했다. 그러나 인도 아브라함이 코스이탈의 실수를 범해 실격 처리, 금메달을 차지했다.

임춘애는 1500m와 3000m에서 또 금을 획득, 석권한 3관왕에 올랐다.

34. 한 타스의 금메달

복싱은 오랫동안 대한민국 국제대회의 메달밭이었다. 첫 금은 레슬링에게 빼앗겼지만 올림픽에서나 아시안게임에서나 늘 선두주자였다. 1970년 아시안게임에서 6개,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 5개,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 7개를 딴 복싱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12체급 전체급 금메달을 획득했다. 라이트플라이급 오광수, 플라이급 김광선, 밴텀급 문성길, 페더급 박형옥, 라이트급 권현규, 라이트웰터급 김기택, 웰터급 김동길, 라이트미들급 이해정, 미들급 신준섭, 라이트헤비급 민병용, 헤비급 김유현, 슈퍼헤비급 백현만이 전체급 석권의 주인공이었다.

35, 문성길, 첫 세계선수권 정복

문성길이 아마추어와 프로의 링을 모두 정복한 돌주먹.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5년 월드컵 금메달리스트인 문성길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 이어 11월 미국 리노에서 열린 제4회 세계선수권까지 석권했다. 서울올림픽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프로로 전향한 그는 1988년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1990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등 두 체급 챔피언이 되었다.

36. 서울에서 오른 세계 4강

1988년 9월 17일 마침내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내 나라 내 땅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LA 등 두 차례의 반쪽 올림픽을 하나로 묶은 평화의 올림픽이었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12개를 획득하며 일약 4강에 오르며 올림픽에서 처음 일본을 눌렀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급 김영남, 자유형 82kg급 한명우, 복싱 플라이급 김광선, 라이트급 박시헌, 유도 60kg급의 김재엽, 65kg급의 이경근, 탁구 남자 개인전 유남규, 여자 복식 양영자-현정화과 금메달을 목에 걸렀다. 양궁은 남녀 4개의 금메달 중 3개를 쓸어모았다. 17세의 김수녕은 개인전에 이어 여자단체 금메달까지 획득,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이 되었다. 남자는 단체전(박성수, 이한섭, 전인수) 금메달을 쏘았다.

37. ‘올림픽의 마지막 선수’ 자원봉사자

서울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끈 숨은 공로자는 자원봉사자들. 총 2만 7천2백21명이 서울올림픽자원봉사에 나섰다. 20세이하가 1만4천4백61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이 21세이상에서 25세까지가 7천7백33명이었다. 여자가 1만4천4백75명으로 1만2천7백46명의 남자보다 조금 많았다. 이들은 올림픽 기간 동안 경기장(1만2천7백46명), 행사장(8천9백4명), 지원부서(3천8백56명)등을 제 집 안방처럼 누비며 코리아의 얼굴이 되었다.

외신들은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자원봉사자였다. 그들을 통해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본 모습을 보았고 한국인의 정을 몸으로 느꼈다”고 썼다.

38. 김수녕, 세 번의 올림픽, 6개의 메달

김수녕은 1987년(청주여고 1년)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는 첫 올림픽인 88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쏘았다. 그리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과 단체전 금메달, 그리고 한차례 쉰 후인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또 단체전 금을 맞췄다. 김수녕은 세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39. 평양 통일축구대회

1990년 10월 11일 오후 3시 평양 5.1경기장(능라도 경기장). 15만여명의 북한 인민과 김일성주석이 지켜 보는 가운데 남과 북의 축구경기가 열렸다. 남측 대표선수들은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마친 후 바로 평양으로 날아갔다. 경기는 비교적 차분하게 치러졌다. 몸싸움도 많지 않았고 파울에 의해 넘어지면 서로 손을 잡아주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북한이 2-1로 이겼다. 서울 경기는 10월 23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남이 1-0으로 이겼다.

40. 하나가 되어 이룬 지바의 꿈

1991년 4월 29일 일본 지바의 닛폰 컨벤션센터에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결승.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가슴에 새기고 중국과의 결승에 나선 단일팀의 대표선수는 북의 리분희, 류순복, 남의 현정화, 홍차옥이었다. 중국은 예상대로 등야핑과 가오준을 앞세웠다.

첫판에서 유순복이 세계1위 등야핑을 잡았다. 두 번 째 판은 현정화의 승리. 그러나 리분희-현정화조가 등야핑-가오준조에게 덜미를 잡혔고 이어진 단식에서 현정화가 등야핑에게 무너졌다. 마지막 다섯 번째 게임. 상승기류의 류순복이 가오준을 잡았다. 셋트스코어 3-2, 코리아 단일팀이 거함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며 우승했다.

41. 코리아 청소년 축구 단일팀

지바에서 둘이 하나가 된 위력을 맛 본 남과 북은 또 하나의 예정된 단일팀을 출발시켰다. 1991년 6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였다. 합숙훈련과 두 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남과 북 양측 똑같이 9명씩 18명을 선발했다. 1991년 6월 14일 단일팀은 난적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었다. 그리고 8강에 진출했다. 8강전에서 우승후보 브라질에게 졌지만 1983년 멕시코 대회 4강 이후 최고 성적이었다.

42. 확실한 금메달 쇼트트랙

기대했던 쇼트트랙. 김기훈이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김기훈은 남자 5,000m 계주(김기훈, 모지수, 송재근, 이준호)에서 금메달을 하나 더 더해 아시아 최초의 동계올림픽 2관왕이 되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의 대한민국은 단숨에 10위권에 진입했다.

김윤만이 1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동계올림픽 11번째 참가 끝에 수확한 역사적인 첫 메달이었다.

43. 첫 금과 마지막 금을 기록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대한민국의 금메달로 시작하고 마감했다. 사격의 여갑순이 첫 금을 쏜데 이어 마라톤의 황영조가 마지막을 장식했다.

대한민국 344명(임원 97명, 선수 247명)의 선수단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5개, 동메달 12개 획득하며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다.

레슬링은 또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그레코로만형 57kg급의 안한봉과 자유형 74kg급의 박장순이 그 주인공이었다. 배드민턴과 사격도 남녀가 각각 금메달을 따냈다. 남자 복식의 김문수-박주봉조, 여자 복식의 정소영- 황혜영조가 배드민턴 올림픽 첫 금을 기록했다. 이은철은 소구경 소총 복사, 여갑순은 공기소총 10m에서 금을 쏘았다.

여자양궁은 개인전 올림픽 3연패, 단체전 2연패의 위업을 이룩했다. 여자양궁은 서울에 이어 또 금,은,동을 다 차지했다.

역도 56kg급의 전병관, 여자 유도 72kg급의 김미정은 이 종목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

44. 황영조의 마라톤 금메달은 대한민국 최초이지만 한국인으로선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손기정에 이어 두 번째. 황영조는 마지막 스퍼트에서 2위로 뒤쫓아 오던 일본의 모리시타를 제침으로써 한일양국의 마라톤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은 1936년 8월 9일 ‘조선인’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을 일본국 금메달로 치부, 56년만의 금메달을 노린다고 난리쳤다.

45, 여성 금메달 등록한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전이경이 쇼트트랙 1,000m에서 우승,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첫 여성 금메달리스트로 등록했다. 전이경은 여자 3,000m 계주(전이경, 김윤미, 김소희, 원혜경)에서도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올랐다. 계주에 출전한 김윤미의 당시 나이는 만 13세 3개월. 역대 동,하계 올림픽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되었다.동행복권파워볼

대한민국은 금메달 4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로 종합순위 6위까지 치솟았다.

46. 호리병 주법으로 올림픽 2연패한 김기훈

김기훈의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개척자로 동계올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다. 1992 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2관왕인 김기훈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1000m에서 다시 우승, 올림픽 2연패에 성공했다.

47. 약관의 대학생 박찬호, 메이저리그 문을 열다

1994년 1월 12일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었던 한양대생 박찬호. 1996년 4월 7일 구원승으로 메이저리그 첫 승을 작성하고 4월 12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나서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 1997 시즌 마침내 선발 요원이 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17년간 LA 다저스와 텍사스 레인저스 등 7개구단에서 활약하며 124승(97패)을 올렸다.

48.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진출 22. 금 7개 은 15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은 초반 금메달이 늦어 결국 금메달 7개로 마감했다 금메달은 여자양궁, 유도, 배드민턴이 2개씩 따냈고 레슬링이 1개를 땄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48kg급의 심권호가 첫 금을 작성했고 방수현은 여자 배드민턴 단식경기, 김동문-길영아조는 혼합복식 경기에서 금을 수확했다. 여자 양궁은 또 개인과 단체전을 모두 휩쓸었다. 김경욱은 개인전 금메달에 이어 단체전 금메달까지 쏘아 2관왕에 올랐다. 유도에선 남자 86kg급 전기영과 여자 66kg급 조민선이 금매트를 빛냈다.

49. 심권호, 2체급 그랜드슬램 시동을 걸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48kg급에서 우승한 심권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54kg급 까지 석권, 2체급에서 그랜드슬램을 이룬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심권호는 48kg급에서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 게임, 1995년 마닐라 아시아선수권대회, 1995 프라하 세계선수권대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정상을 밟았고 54kg급에서 1998년 예블레 세계선수권,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1999 타슈켄트 아시아 선수권대회,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우승을 차지했다.

50. 마지막에 웃은 방수현

방수현은 2019년 우리나라 배드민턴 단식 선수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BWF(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방수현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4강전에서 평생의 라이벌 수산티를 2-0으로 셧아웃 시킨후 결승에서 인도네시아의 겁 없는 신예 아우디나 역시 2-0으로 물리쳐 마지막 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51. 우리 생애 가장 아름다운 순간

애틀랜타올림픽의 은메달은 모두 15개.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은메달로 22차례나 결승전을 치뤘으나 이긴 경기는 고작 7번. 그 아까운 은메달 중에는 올림픽 3연패를 노렸던 여자 핸드볼도 있었다. 1988년 서울과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 금을 목에 걸었던 여자 핸드볼은 결혼한 선수까지 다시 불러 모으며 의지를 불태웠으나 연장접전 끝에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아름다운 은메달이었으나 그들의 노력이 너무 아까웠다.

52. 이봉주도 아쉬운 은메달

이봉주의 애틀랜타 은메달 역시 아쉬웠다.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의 마르틴 피스는 잡았으나 느닷없이 나타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에게 뒤져 2위로 골인했다. 이봉주는 그러나 5년뒤에 벌어진 2001년 보스턴마라톤에선 우승했다.

53. 선동열, 일본프로야구 진출

선동열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국내 프로야구 출신 1호. 1996년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주니치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1997년 두 번째 시즌에서 38세이브를 기록, 세이브 공동 1위(구원 2위)를 했다. 방어율 0.76으로 그가 세이브에 실패한 것은 단 한번밖에 없었다. 98년 방어율 0.86에 3승 29세이브, 99년 1승2패 28세이브를 작성했다. 1999시즌 주니치의 리그 우승까지 함께 한 선동열의 일본 통산 성적은 162경기 10승 4패 98세이브.

54, 대한민국 여성 쇼트트랙을 개척한 전이경

1998년 18회 나가노 동계올림픽(2월7일~2월23일). 전이경은 1,000m에 이어 3,000m 계주(전이경, 안상미, 김윤미, 원혜경)까지 석권, 2관왕 2연패를 이룩했다. 전이경은 2개 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모았다.

55. 하얀 발, 새카만 종아리 박세리

1998년은 대한민국이 IMF로 신음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박세리가 ‘맨발’로 등장했다. 세계적 관심사였던 U.S 여자오픈 연장 승부 서든데스 두 번째 홀. 박세리가 친 공이 그린을 지나 연못 비탈에 걸렸다. 치기 매우 힘든 위치였고 승부는 그래서 기우는 듯 했다. 그 때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갔다. 박세리가 양말을 벗는 순간 모두들 눈을 의심했다. 양말에 감춰진 발은 새하얗고 밖으로 나온 종아리는 흑백 배치처럼 새카매서였다. 공을 제대로 맞추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엄청난 트러블 샷. 그러나 물속에서 친 박세리의 공은 그린에 얌전하게 올라갔고 박세리는 이틀간 92홀을 친 US여자오픈역사상 최장경기의 승리를 품에 안았다. 박세리는 그 해 총 4승을 하면서 2010년 벨 마이크로 클래식 때 까지 25승을 작성했다.

56. 야구, 아시안게임 첫 우승

프로 출전이 허용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앞세워 전승행진을 하며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선 두차례에 이어 세 번째 맞붙은 일본과의 결승전. 박찬호가 1회 초 솔로 홈런을 맞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뿐이었다. 7회 이미 13점을 쌓아올려 13-1, 7회 콜드게임승을 거두었다. 일본전 3전승을 비롯 6전승으로 만든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57. 여자양궁 2관왕 4연패

여자 양궁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개인, 단체 금메달을 쏘았다. 2관왕 올림픽 4연패였다. 윤미진이 개인전 신궁으로 등극했고 김수녕은 단체전(김남순, 김수녕, 윤미진)의 일원으로 4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모았다.

58. 국기 태권도 올림픽 정식종목

태권도가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새롭게 등장, 3개의 금을 수확했다. 남자 태권도 86kg 김경훈, 여자 태권도 57kg 정재은, 67kg 이선희가 각 체급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59. 야구 올림픽 첫 메달

야구의 초반 행보는 좋지 않았다. 그러나 중반이후 힘을 찾으며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일본은 한국팀 킬러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선발로 내세워 필승을 노렸지만 대한민국은 구대성의 9이닝 1실점 완투와 이승엽의 8회 결승 2타점 2루타로 3-1로 승리, 야구의 올림픽 첫 메달을 획득했다.

60. 새천년의 감격, 공동입장

2000년 9월15일 시드니올림픽 개막식. 사상 처음 남북한이 동시에 입장했다. 아리랑 음률속에 남북이 한반도가 그려진 코리아’의 깃발을 들고 등장하자 모든 관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남북 공동입장으로 시작된 시드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8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0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지난 대회에 비해 금메달은 1개 늘었으나 종합순위는 12위로 떨어졌다.

61. 광주일고 3인방, 메이저리그서 뛰다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은 모두 광주일고 출신. 서재응이 3학년이었을 때 김병현과 최희섭은 2학년과 1학년이었다. 김병현은 성균관대 재학중 메이저리그애리조나로 직행했다. 2001년 시즌 19세이브로 성장세를 이룬 김병현은 그 해 영욕의 월드시리즈 마운드에 올랐다. 서재응은 2003년 뉴욕 메츠 마운드에서 188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며 9승12패(방어율 3.82)를 작성, 2007년 시즌 탬파베이까지 통산 28승을 작성했다. 최희섭은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로 4시즌을 뛰었다. 2004년 플로리다 마린스에서 홈런 15개와 2할5푼1리의 타율을 기록했고 2005년 LA 다저스에서 홈런 15개 타율 .253을 기록했다.

62. 월드컵 첫승, 그리고 4강

2002년 6월4일 8시30분 대한민국 부산아시아드 메인스타디움. 폴란드를 상대로 한 대한민국의 월드컵 1차전이 시작되었다. 대한민국은 D조로 폴란드, 미국, 포루투갈과 한 조였다. 대한민국은 2승1무로 조예선을 통과한 16강전에서 이탈리아, 8강전에서 스페인을 꺾고 단숨에 4강까지 올랐다.

대한민국은 황선홍, 유상철의 골로 폴란드를 2-0으로 누르고 월드컵 첫 승을 거둔 후 박지성이 결승골로 포루투갈을 1-0으로 꺾고 2승1무를 기록,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올랐다.

대한민국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설기현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연장 역전 결승골로 2-1로 눌렀고 8강전에선 스페인을 승부차기 끝에 이겨 4강에 올랐다. 승부차기에서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홍명보가 모두 골을 성공시켰다.

63. 4강, 멋진 그 여름의 월드컵파워사다리

독일과의 4강전도 사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목표를 뛰어넘은 뒤여서 승리에 대한 기대치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이기면 더없이 좋지만 져도 정말 잘했다는 생각들이었고 그런 탓인지 0-1로 행진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미 기운이 빠진 대한민국호는 터키와의 3,4위전에서도 잘 싸웠지만 경기개시 11초만에 첫골을 내주는 등 전반 15분이 지나기 전에 2골을 내주는 바람에 2-3으로 패했다.

64. 붉은 악마의 함성

2002년 대한민국의 6월은 뜨거웠다. 우리 경기가 열리는 날, 서울의 광화문, 시청앞, 대학로를 비롯하여 전국이 대한민국 응원하는 붉은 물결로 뒤덮였다. 그 속에서 언제 다시 되풀이 할 수 있을지 모를 월드컵 4강의 가슴 벅찬 여정이 마무리 되었다.

65, 지치지 않는 산소탱크 박지성

박지성은 히딩크의 안목으로 월드컵 스타가 되었다. 2002년 12월 PSV 에인트호번으로 날아갔던 박지성은 2005년 6월 22일 세계적인 명문구단 맨유(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이 되었다. 맨유 시절인 2011-12시즌까지 7시즌동안 박지성은 205경기에 출전해 통산 27골을 기록했다. 맨유에서 통산 200경기 이상 출전한 첫 아시아인이었다. 박지성은 2006-07 시즌 팀의 우승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66. 세계 그린 휘어잡은 완도사나이 최경주 2002년

대한민국 프로골프는 최경주가 있어서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1999년 늦은 나이에 PGA 투어 자격을 얻은 그는 대부분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2002년 뉴올리언스 컴팩 클래식과 탬파베이 클래식 정상에 올랐다. 최경주는 2011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12년 PGA 생활에서 총 8차례 우승을 작성했다.

67. 여자선수가 빛난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2월08일~2월24일)에선 여자선수들만이 금메달 2개, 은메달 2개를 다 땄다. 고기현이 1,500m 금메달과 1,0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최민경, 주민진, 박혜원, 최은경이 3,000m 계주 금메달을 합작했다. 최은경은 여자 1,500m 은메달.

68. 운동장 안에서의 작은 통일

2002년 9월 29일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 18개종목 184명의 북 선수단은 고려항공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280명의 응원단이 만경봉호를 타고 부산 다대포항에서 내렸다. 북한이 남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으로 경기장에는 분단 후 최초로 인공기가 게양되었다.

69. 북한 미녀응원단

북한의 미녀응원단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처음 찾았다. 응원단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 대부분 예술대학 출신으로 미모가 뛰어나 순식간에 미녀응원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 차림을 한 응원단은 취주악대의 ‘반갑습니다’ 연주에 맞춰 인공기를 흔들며 등장하곤 했다. 남쪽 사람들에게 한바탕 바람몰이를 한 북의 미녀응원단은 2003년 제22회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제16회 인천 아시아 육상선수권대에 연이어 나타났다. 후일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이 된 리설주가 학생 신분으로 참석했다.

70. 트로이의 목마가 된 국민타자 이승엽

일본과의 많은 경기에서 고비마다 홈런을 쏘아 올려 ‘국민타자’가 된 이승엽은 2004년 지바 롯데를 거쳐 2006년 요미우리로 옮겼다. 4년간 최대 30억엔이었다. 이승엽은 2005시즌 30홈런, 2006시즌 41홈런으로 홈런 2위를 기록했다. 타율 2위(.323), 장타율 3위(.615)에 타점 4위였다. 이승엽은 국내에서 13시즌, 일본에서 8시즌 등 총 23시즌 활약하며 통산 626개의 홈런을 작성했다. 일본에서의 홈런은 159개였다.

71. 10위권 복귀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9개, 은메달 12개, 동메달 9개로 종합순위 9위를 기록, 10위권 복귀에 성공했다. 여자양궁 박성현은 2관왕이 되었고 남자 양궁 단체(박경모, 임동현, 장용호)도 금을 쏘았다. 태권도는 남자부에서만 2개의 금메달(57kg 장지원, 80kg 문대성)이 나왔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0kg급의 정지현과 남자 유도 73kg급의 이원희는 격투기 금메달의 맥을 이었고 유승민은 16년만에 남자 탁구에서 금메달을 캤다. 남자 배드민턴 복식 김동문-하태권조도 금메달을 보탰다.

72. 메이저리그 200홈런 추신수

추신수는 2001년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출발한 후 2005년 메이저리그로 올랐다. 클리브랜드로 옮긴 2009년 3할 타율을 기록하며 20홈런-20도루 멤버가 되었다. 2010년에도 22홈런-22도루를 기록, 톱랭커중의 한명이 되었다. 2014년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긴 추신수는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 중 최초로 사이클링 히트(2015.07.21)와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으며 20홈런-20도루를 총 3번 세웠다. 추신수는 2019년까지 모두 7번의 시즌에서 홈런 20개 이상을 쳐내며 2019년 시즌 200홈런 고지에 올랐다.

73. 남북 공동 입장한 첫 동계올림픽 2006년 토리노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2월 10일~2월 26일)은 남북 공동입장으로 시작되었다. 쇼트트랙의 양웅인 남자 안현수와 여자 진선유가 6개의 금메달을 합작했다. 안현수는 1000m, 1500m, 계주 5000m(서호진, 송석우, 안현수, 오세종, 이호석), 진선유는 1000m, 1500m, 계주 3000m(변천사, 최은경, 전다혜, 진선유, 강윤미)에서 모두 우승, 3관왕이 되었다.

쇼트트랙이 아닌 종목에서도 모처럼 메달이 나왔다.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경기에서 이강석이 동메달을 땄다.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 등 메달 11개로 역대 올림픽 최다였다.

74. 약속의 8회 일본을 두 번 꺾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2006년 메이저리그가 주축이 된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일본전. 7회까지 번번히 기회를 놓치며 0-1로 끌려 다녔으나 약속의 8회, 이승엽이 역전 투런 홈런을 쏘았다. 2라운드일본전 ‘약속의 8회’. 이종범이 0의 균형을 깨는 2타점 2루타를 쳐 2-1로 이겼다.

75. 2008년 베이징의 힘찬 비상

2008년 8월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1개, 동메달 8개 획득했다. 금메달 13개는 역대 최다였다. 베이징에선 다양한 종류의 금메달이 나왔다. 야구가 남자 구기종목 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을 만들었다. 장미란은 여자 역도 최초의 금메달을 들어올렸다.박태환은 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보라를 일으킨 후 200m에서 은메달을 기록했다. 태권도는 처음으로 전종목 우승을 차지, 4개의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여자 양궁은 개인전 7연속 우승에 실패했다. 하지만 단체전에선 남(박경모, 이창환, 임동현), 녀(박성현, 윤옥희, 주현정) 모두 우승했다.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이효정과 짝을 이루어 금메달을 차지한 이용대는 화려한 플레이로 일약 베이징올림픽 스타로 떠올랐다. 진종오는 남자 사격 50m 공기권총에서 금메달, 남자 역도 77kg의 사재혁과 남자 유도 60kg급의 최민호도 금메달을 따냈다.

76. 세계를 들어 올린 아름다운 손 장미란

장미란(1983년생)은 ‘힘센 여자’ 백옥자가 물러난 지 30여년만에 나타난 대한민국 대표 ‘힘센 여자’이다.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75kg급에서 인상 140kg, 용상 186kg을 들어올려 종전 세계 신기록보다 3.5kg이 많은 합계 326kg으로 인상, 용상, 합계 모두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장미란은 두 번의 세계기록을 깨는 등 모두 5개의 세계신기록 쇼를 펼쳤다.

77. 한 여름밤의 전승행진

4강전 상대는 일본. 일본의 호시노감독이 큰 소리친대로 막판까지 끌려 다녔으나 ‘약속의 8회’ 이승엽이 역전 2점 홈런을 치면서 승리, 은메달을 확보했다. 결승상대는 아마추어 최강의 쿠바. 9회 1사까지 3-2 스코어를 유지했으나 만루를 허용,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류현진을 이은 정대헌이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유도하여 1점차 리드를 지키며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전승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78, 미소년, 박태환 금빛 물결 일으키다

수영은 오랫동안 우리나라 사람이 정상에 설 수 없는 난공불락의 아성으로 여겨졌다. 여러 가지 신체조건이 동양인과는 맞지 않는다는 편견때문이었다. 그러나 박태환으로 인해 불가능은 없음이 입증되었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3분 41초 86의 기록으로 대한민국 수영에게 상상도 못한 금메달을 안겼다. 그리고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건져올렸다. 박태환은 4년 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79. 대한민국은 다시 7위.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2월12일~2월28일)은 대한민국의 기념비적인 동계올림픽이었다. 빙상 3개종목인 스피스 스케이팅, 피겨 스케이팅, 쇼트트랙에서 모두 금메달을 획득했다. 금메달은 6개로 토리노와 같았지만 질적인 면에선 토리노를 훨씬 능가했다. 전체 메달도 은메달 6개, 동메달 2개 등 총 14개로 역대 최다였고 종합순위는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이상화가 합계 76초09의 기록으로 대한민국 여자 빙속 사상 첫 메달이자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80. 모태범, 스피드스케이팅 첫 금메달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기대를 걸었던 이강석, 이규혁 등을 제치고 깜짝 우승했다. 1차 인 코스 기록 34.92, 2차 아웃코스 기록 34.90였다. 모태범은 1,000m 준우승으로 은메달을 하나 더 목에 걸었다.

81. 이승훈 금빛 질주

은메달로 시동을 걸었던 이승훈은 10000m에서 기어코 금빛 질주를 했다. 아시아 최초의 장거리 금메달이었다.

82. 피켜 퀸에 등극한 김연아

2010년 벤쿠버 동계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완벽한 연기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멀리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는 프리에서 150.06, 쇼트에서 78.50 등 총점 228.56점을 얻었다. 피겨의 금메달을 일찍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김연아는 올림픽 우승으로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 사상 최초로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사대륙선수권+그랑프리파이널 석권)을 달성했다.

피겨 스케이팅 최초의 그랜드슬러머(올림픽, 세계선수권, 4대륙선수권, 그랑프리 파이널)인 그는 2014년 소치에서 다시 한번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했다. 주최국 러시아의 피겨 금메달에 대한 욕심 탓에 편파판정이 이어졌고 김연아는 은메달을 차지했다.

83. 원정 16강 2010년 남아공월드컵

2010년 남아공월드컵. 허정무가 대한민국 월드컵호를 지휘했다 예선 1차전, 이정수가 전반 7분, 박지성이 후반 7분 골을 터뜨려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다. 두 번째 경기인 아르헨티나전에선 1-4로 고배를 들었다. 3차전,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지만 아르헨티나가 3전승 하는 덕분에 1승1무1패를 하고도 원정 첫 16강 무대에 올랐다.

원정무대에서 처음으로 가지는 우르과이와의 16강전. 경기 시작 8분만에 골을 내주는 바람에 끌려다녔다. 후반 23분께 이청룡이 헤딩골을 넣어 동점을 만들었지만 종료 10여분을 남기고 또 수아레스에게 당해 1-2로 물러나고 말았다.

84. 원더골의 최강 손흥민

손흥민은 차범근, 박지성의 맥을 이었다. 손흥민의 유럽 데뷔는 2010년 함부르크 SV. 바이어 04 레버쿠젠 (2013~2015)을 끝으로 분데스리가 생활을 청산하고 2015시즌부터 프리미어 리그에 뛰어 들었다. 손흥민의 줏가가 확실하게 뛴 시기로 손흥민은 토트넘 핫스퍼 FC의 에이스가 되었다. 손흥민은 2019년 10월 22일 한국인 유럽리그 최다득점 타이 기록을 세웠다. 26세에 데뷔한 차범근이 분데스리가 11년동안 넣은 121골을 27세에 기록했다. 손흥민의 2020년 7월 현재 기록은 리그 93골 36도움 포함 총 133골 56도움. 사이사이 차출된 국가대표 A매치 경기에서도 10년간 85게임에서 26골을 작성했다. 18세였던 2010년부터 태극전사로 활약하여 2011년 첫 골을 시작으로 2019년 11게임에서 3골을 넣었다. 이같은 국가대표 활약으로 손흥민은 전 대륙 A매치 득점이라는 흔치않은 기록까지 가지고 있다. 손흥민은 2019년 12월 7일 번리와의 EPL 16라운드에서 ‘70m 드리볼’의 ‘원더 골’을 터뜨려 세계적인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모든 언론이 원더골로 지칭한 이 골은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선정한 ‘이달의 골’에 이어 2020년 4월 스카이스포츠가 선정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골’로 선정되었다.

85. 런던의 두 추억

2012년 7월27일 런던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이 따낸 메달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8개. 64년전 첫 올림픽의 동메달 2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 또 다시 일본을 제치고 종합5위를 차지,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했다.

86. 축구의 첫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오래 전 8강의 추억이 있는 곳. 예선에서 멕시코와 가봉과는 비겼지만 스위스를 2-1로 눌러 8강무대에 올랐다. 8강 상대, 영국을 승부차기 5-4로 눌러 올림픽 사상 첫 4강고지에 올랐다. 브라질에 0-3으로 패퇴했지만 올림픽 첫 메달을 놓고 싸운 일본전에서 승리, 올림픽 출전 64년 만에 메달을 만들었다.

87. 동메달은 못땄어도 MVP는 김연경

2012 런던올림픽 여자배구. 26년만에 동메달을 바라보았으나 막판 연거푸 지는 바람에 4강에 머물렀다.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진 후 동메달전에서 일본에 0-3으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대한민국호를 이끌었던 김연경은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김연경은 여자부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88.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

이대호는 2012 시즌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와 2년간 총액 7억엔(105억 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첫 해 144 전 경기에 출장하며 525타수 150안타(5위), 타율 0.286(10위), 24홈런(공동 2위), 91타점(1위), 장타율 0.478(2위)로 타격 전 부문 상위랭커가 되었다. 2014 시즌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이대호는 2015 시즌 일본시리즈 2차전 4회 선제 2점홈런, 4차전 1회 좌전안타와 3회 싹쓸이 3타점 2루타, 5차전에선 4회 결승 투런 홈런을 쏘아 시리즈 MVP가 되었다.

89. 코리아 몬스터 류현진

류현진은 메이저리그(LA 다저스) 첫 시즌인 2013년 14승(8패)을 작성했다. 방어율 3.00의 수준급 선발로 2014년에도 14승을 올렸다. 성공작이었지만 부상이 앞길을 막았다. 어깨, 사타구니 부상 등으로 3년 이상을 제대로 뛰지 못했다. 2018년 후반기 7승으로 힘을 내기 시작한 류현진은 2019년 다저스의 개막전 선발로 나서면서 확실한 에이스로 떠올랐다. 그는 5월에 6경기 45와 3분의 2이닝 5승 0패 방어율 0.59 28피안타(0피홈런) 3실점(3자책) 3볼넷 36삼진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5월 7일 애틀랜타와의 홈경기에선 93개의 공으로 4피안타 6K 무실점 투구를 하여 메이저리그 두 번째 완봉승을 작성하며 5월의 투수상을 받았다. 8월의 3경기를 망치는 바람에 한달 방어율이 7.48까지 올라 눈앞까지 왔던 사이영상을 놓쳤으나 14승에 2.32의 방어율로 메이저리그 전체 방어율1위를 차지했다. 메이저 리그에서 동양인 투수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류현진이 처음이었다. FA자격을 획득한 류현진은 2019년 12월 2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000만달러의 계약을 맺고 다저스를 떠났다.

90. 이상화, 올림픽 2연패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했다. 하지만 이상화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또 우승, 올림픽 2연패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이상화의 올림픽은 4번이다. 강철 심장, 강철 체력, 강철 마인드를 지닌 철의 여인만이 가능하다. 적어도 12년 이상 최정상의 기량을 유지해야 하므로 그 퍼센티지는 실제로는 계산 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상화가 유일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상화는 네 번의 올림픽에서 세 차례나 메달을 목에 걸고 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박승희는 쇼트트랙 여자 1,000m에 이어 3,000m 계주(심석희, 박승희, 공상정, 김아랑, 조해리)에서도 우승, 2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91. 2015년 WBSC 프리미어12

2015년 프로야구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 예선 첫 대결에서 5-0의 완승을 거둔 일본은 한국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듯 결승전 선발까지 예고했다. 예상대로 한국은 8회까지 0-3으로 끌려다녔다. 다시 완봉패가 걱정되던 9회, 정근우의 첫 타점에 이어 이대호의 2타점 결승 역전타로 순식간에 경기를 4-3으로 뒤집었다. 9회 대역전쇼를 벌인 김인식의 대한민국호는 결승에서 미국을 8-0으로 셧 아웃시키며 WBSC 프리미어 12 첫 챔피언이 되었다.

92. 남녀양궁 금 4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한민국의 금메달은 9개. 그동안 수없이 변죽을 울렸던 양궁이 마침내 전종목 석권으로 4개의 금메달을 다 쓸어모았다. 여자 개인전에선 장혜진, 남자 개인전에선 구본찬이 우승했다. 이들이 이끈 여자단체(최미선, 기보배)와 남자단체(김우진, 이승윤)도 금을 맞혀 남녀양궁은 모두 2관왕이 되었다. 여자단체는 올림픽 8연패의 위업을 이룩했다.

남자 펜싱 에뻬의 박상영, 여자 태권도 -49kg급의 김소희와 –67kg급의 오혜리가 금을 더했다.

93. 진종오 올림픽 첫 3연패

진종오는 2008년 베이징에서 첫 금을 쏜 후 2012년 런던에 이어 2016년 리우까지 올림픽 3회 연속 금을 쏘았다.

94. 116년만의 골프 여제 박인비

리우 올림픽 여자 골프는 116년만에 다시 열린 대회. 박인비는 1라운드에서 1타차로 중간성적 1위를 놓쳤지만 이 후 3일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 단 한번도 1위를 내주지 않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인비는 2008년 만 20세의 나이로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한 후 2013년 LPGA 챔피언십과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그리고 2015년 브리티시 오픈 정상 등 메이저대회를 차례대로 점령, 여자 골프 역사상 7번째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완성했다. 그리고 2016 리우 올림픽 정상에 섬으로써 사상 처음 커리어 골든 슬램을 달성했다.

95. 2018의 멋진 겨울-평창 동계올림픽

동계올림픽 유치 3수만에 성공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2월 9일 대한민국 땅 강원도 평창군, 강릉시, 정선군에서 막이 올랐다. 대한민국 최초의 동계올림픽이고 아시아 세 번 째 동계올림픽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한 지 30년 만으로 전 세계에서는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러시아에 이어 8번째, 아시아에서는 2번째로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국가가 되었다. 또 FIFA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세계 4대 국제 이벤트를 개최한 5번째 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가 되었다

96. 세 개의 코리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는 세 개의 코리아가 출전했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남북단일팀인 COR. 단일팀은 국기, 국가도 다 달랐다. 한반도기와 아리랑이 국기였고 국가였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은 급조한 팀이였지만 팀웍은 좋았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미녀응원단을 보냈다.

홈에서의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은 서울올림픽처럼 4강을 목표로 했으나 쇼트트랙의 부진으로 그 뜻을 이루진 못했다. 금메달 5개, 은메달 8개, 동메달 4개로 7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체 메달은 17개로 역대 최다였다. 스켈레톤의 금메달 1개를 비롯 봅슬레이, 스노보드, 컬링의 은메달 3개 등 총 6종목에서 메달을 수확함으로써 동계올림픽의 새 장을 열렀다.

97. 윤성빈, 이승훈의 금메달

윤성빈은 스켈레톤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승훈은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98. 세계100대 사진으로 선정된 북 여성들의 산타패션

북이 응원단 형식을 취해 젊은 여성들을 다시 보낸 것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29명의 미녀응원단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2월 7일 오전 경기 파주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내려왔다. 미녀응원단은 모자가 달린 빨간색 체육복 상·하의를 입은 산타패션이었는데 이 장면은 그해 로이터가 선정한 세계100대 사진으로 선정되었다.

99. 독일을 꺾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마지막 경기 독일. 스웨덴에 0-1, 멕시코에 1-2로 물려 16강이 물 건너 간 뒤였다. 하지만 손흥민의 추가시간 골 등으로 2-0으로 승리, 대한민국의 매운 맛을 보여주며 독일을 예선탈락의 막다른 길로 몰았다.

100. 야구, 축구 동반우승

인기 구기종목인 축구와 야구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반우승했다. 결승상대는 모두 일본. 그래서 감격이 더했다. 축구의 김학범감독은 “일장기가 태극기보다 위에 올라가는 것은 볼 수 없다”를 투지를 불살랐다. 야구는 일본대표가 프로로 무장한 우리와 달리 아마추어급이어서 싱거웠다.


■ 프로야구 SK, 자아 성찰 프로그램으로 템플 스테이 선택

SK 와이번스 선수단 내에서 음주·무면허 운전과 폭행 사건이 알려진 지 하루가 지났다. 구단은 이를 숨기고 자체 징계로 넘어가려다 뒤늦게 신고를 해 화를 끼웠는데 여기서 벌금과 함께 징계로 선택한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야구팬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보통 템플 스테이는 속세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과 수행 등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는 프로그램이다.

SK구단은 해당 선수들에게 최대 1,000만 원의 벌금을 물린 뒤 강화도에 있는 전등사로 3주간 템플 스테이를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구단 관계자들은 “벌금 외에 템플 스테이 징계는 처음 들어봤다”고 말했다.


■ SK 관계자 “템플 스테이는 자아 성찰 프로그램, 반성하라는 의미로 보낸 것”

“3주 동안 유니폼을 반납하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시켰어요. 강화 전등사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내는 의미였죠. ” SK 관계자는 이번 일로 면목이 없다며 선수들을 반성하는 의미로 택한 프로그램이라고 전했다.

“원래 코로나 19 때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계획했어요. 그런데 템플 스테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그때 템플 스테이를 못 보냈기 때문에 이번에 활용하게 된 겁니다.”라며 음주 운전에 연루된 선수들의 장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 템플 스테이 참가자는 누구였을까?

템플 스테이를 체험한 선수는 주로 음주 운전과 폭행에 연루된 선수들이었다. 선후배 간 폭행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A 투수는 템플 스테이 참가자 명단에서 빠졌다. 염경엽 감독이 키움 시절부터 유망주로 점찍었던 A 투수는 당시 상황을 훈육 차원이었다고 항변하며 많이 뉘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주 상태로 새벽 5시에 귀가한 B 선수를 비롯해 나머지 4명은 이번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구단 측에서 선수들을 사찰로 보내 프로그램을 수강하도록 하긴 했지만, 외부에 조금이라도 알리지 않았던 사실 그리고 KBO 역시 늑장 대응을 한 책임소재를 놓고 야구팬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 전등사 관계자 인터뷰 “SK 선수들 휴식 프로그램 이용, 스님이 드시는 음식으로 식사”

선수들은 템플 스테이에서 무엇을 했을까? KBS가 전등사 관계자와 전화 통화를 해 물었다.

– 이번에 SK 야구 선수들이 왔던 것 알고 계신가요?

” 5명씩 오고 또 몇 명 오고 이런 식으로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요.
선수들 명단은 공개하기 힘들고요. 그 선수분들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잖아요. 저희도 SK 선수들이 자기들만의 프로그램을 해서 정확하게 누가 왔는지 기억하기가 힘드네요.”

– 자기들의 프로그램이 뭔가요?

“저희가 정규 프로그램이 있고 휴식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SK 선수들이 이용한 프로그램은 정규가 아니라 휴식 프로그램이었어요. 이러한 휴식 프로그램은 스님들하고 함께하는 행사가 아니거든요. 원래 스님들하고 하는 프로그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요. 04시에는 기상을 하죠. 기상하고 나서 이것저것 저희가 다 보살펴드리죠. 그런데 SK 분들은 스님들하고 함께 하지 않고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분들이 주로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죠. 휴식 프로그램이라서 저희가 관리를 못 해 드려요.”

– 식사나 일과는요?

“여기에 오시면요. 저희가 식사는 스님들이 드시는 음식밖에 준비 못 해요. 스님들이 드시는 것하고 똑같이 먹을 수밖에 없어요. (고기도 못 먹나요? )당연하죠. 고기도 당연히 못 먹죠. SK 선수들도 저희 먹는 것하고 똑같이 드셨을 겁니다.”

– 기독교 선수들도 왔었나요?

“저희가 선수들 종교까지는 다 조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 템플 스테이는 불교뿐 아니라 기독교 분들도 오시고요. 천주교 분들도 많이 오세요. 여기는 종교를 통해서 무언가를 진행한다기보다 종교를 뛰어넘어서 하나의 자아 성찰 체험 행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 기독교 선수들, “종교의 자유 침해” vs 구단 “자아 성찰 프로그램이라 문제없어” 갑론을박

템플 스테이는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3주간 진행됐다. 한적한 곳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성찰하라는 의미였지만 유독 C 선수가 이에 불만을 품었고 개인 SNS에 하소연했다.

일부 선수들은 템플 스테이가 불교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종교가 기독교 선수들은 보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했다.

SK 구단은 “자체 징계와 교육 측면에서 진행한 교화 프로그램이지 종교 행사로 생각하지 않았다. 종교의 자유 침해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출처 | 스페인 ‘마르카’ 영상 캡처
출처 | 스페인 ‘마르카’ 영상 캡처

[스포츠서울 이용수기자] 수비수보다 빠른 심판의 모습이 조명됐다.

14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르카’는 앞서 지난 12일 스위스 슈퍼리그에서 열린 툰과 사마스의 경기를 주목했다. 해당 경기는 툰이 사마스를 3-0으로 제압했다. 주목된 장면은 이날 경기 추가골이 터진 후반 추가시간이다. 툰의 그레고리 카렌은 2-0 상황에서 추가골을 넣기 위해 상대 진영으로 돌파했다.

특히 눈에 띈 건 툰의 선수도 아니고, 사마스의 선수도 아닌 주심이었다. 우르스 슈나이더 주심은 후반 말미임에도 사마스 수비수보다 빠른 속도로 카렌의 뒤를 쫓아 뛰었다.

반면 사마스의 체력이 떨어진 수비수들은 카렌의 추가골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 캘빈 케이터
▲ 캘빈 케이터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트리플 타이틀전으로 뜨거웠던 UFC 251 열기가 평일에도 이어진다.

16일(이하 한국 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UFC 파이트 아일랜드에서 UFC 온 ESPN 13이 열린다. 메인이벤터로 페더급 랭킹 6위 캘빈 케이터(32)와 10위 댄 이게(28, 이상 미국)가 나선다.

대회 메인 카드는 16일 오전 11시부터 스포티비 나우(SPOTV NOW)와 스포티비 온(SPOTV ON)에서 볼 수 있다.

페더급 6위 케이터는 지난해 12월 UFC 부산 대회에서 브라이언 오르테가 낙마 소식을 듣자 곧장 “정찬성과 붙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앞서 자빗 마고메드샤리포프에게 판정패 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라 모두가 놀랐다.

비록 대체자로 프랭키 에드가가 뽑혔지만 덕분에 케이터는 한국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별명인 ‘보스턴 피니셔(The Boston Finisher)’처럼 옥타곤 안팎에서 화끈한 스타일을 지녔음을 어필했다.

케이터는 이게 연승 저지를 확신했다. 지난 13일 사전 기자회견에서 “UFC 파이트 아일랜드에서 펼쳐지는 메인이벤트인데 (출전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면서 “(6연승 중인) 이게는 터프한 파이터이나 난 그가 상대했던 6명과는 다르다. 이번에도 피니시로 끝낼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케이터는 직전 경기에서 베테랑 제레미 스티븐스(34, 미국)를 KO로 눕혀 통산 11번째 KO승을 신고했다. 이번에도 호언대로 화끈한 피니시 승리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게는 지난 5월에 이어 약 두 달 만에 옥타곤에 오른다. 목표는 7연승. 올해만 벌써 세번째 출전이다. 누구보다 치열한 2020년을 보내고 있다.

UFC 데뷔 뒤 첫 메인이벤터 중책을 맡은 그는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진정한 타이틀 컨텐더란 점을 증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이터는 기술과 재능이 모두 뛰어난, 위험한 파이터지만 그에 대해 이미 많은 부문을 연구했다. 5라운드 내내 케이터를 몰아붙여 승리를 따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메인이벤트는 플라이급 파이터끼리 만남이다. 팀 엘리엇(33, 미국)과 라이언 베노이트(31, 미국)가 주먹을 맞댄다. 현재 3연패 중인 엘리엇이 베노이트를 제물로 연패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사진] 후스코어드.
[사진] 후스코어드.

[OSEN=이균재 기자] 아스날전 승리 수훈갑 손흥민(토트넘)이 35라운드 베스트 일레븐서 제외됐다.

손흥민은 지난 13일(한국시간) 새벽 영국 런던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서 열린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35라운드 아스날과 경기서 1골 1도움을 기록, 2-1 승리를 이끌었다.

손흥민은 0-1로 뒤진 전반 19분 동점골로 리그 10호 골을 터뜨렸다. 후반 36분엔 토비 알더베이럴트의 골을 도우며 프리미어리그 10골 10도움의 위업을 달성했다.

영국 축구통계전문업체인 후스코어드닷컴은 14일 EPL 35라운드 베스트11을 선정해 발표했다. 아쉽게도 손흥민의 이름은 없었다.

4-4-2 포메이션 기준, 전방 투톱엔 가브리엘 제수스(맨체스터 시티)와 미첼리 안토니오(웨스트햄 유나이티드)가 이름을 올렸다.

2선엔 라힘 스털링, 베르나르두 실바(이상 맨시티), 루벤 네베스(울버햄튼), 트레제게(아스톤 빌라)가 포진했다.

포백 수비진엔 라이언 프레데릭스(웨스트햄), 크레이그 도슨(왓포드), 잭 오코넬(셰필드 유나이티드), 디에고 리코(본머스)가 위치했고, 골문엔 닉 포프(번리)가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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